문준용의 포차이야기 Part1. 밀리면 끝장이다! - 언 땅에 뿌리는 씨앗
Part1. 밀리면 끝장이다! - 언 땅에 뿌리는 씨앗
언 땅에
뿌리는 씨앗
장사를 시작하고 잠든 아내와 아이 얼굴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폭풍을 몰고 오는 구름처럼 무겁고 컴컴했다. 잠든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일어나는 게 얼마나 서러웠던지. 보험료 몇 푼이 모자라서 간밤에 말다툼을 하다 돌아누워 눈물을 삼켰을 아내를 뒤로 하고 홀로 일어나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가는 새벽길은 늘 한겨울이었다. 이제 봄이 오나 보다 안도했는데 언 마음은 아직 녹을 기색이 아니었다. 그 마음으로 대문을 나서 마주하는 빌딩들도 나에겐 히말라야 산이나 다름없었다.
처음 가게 문을 열 때의 설렘도 잠시 장사는 내 맘 같지 않았다. 전날 장사가 제대로 안 됐으니 별로 장 볼 거리도 없었고, 재료를 살 돈도 없었다. 자꾸 ‘왜 장사가 안 될까?’ 고민만하고 이런저런 안 되는 이유들만 떠올렸다. 가게 목이 나빠 장사가 안 되는 것만 같고, 메뉴 선정을 잘못했나 싶기도 하고, 손님들이 문제인 것도 같았다.
하지만 정작 어떤 메뉴를 추가해야 할지, 음식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도통 감도 잡을 수 없었다.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나,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어쨌든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더 이상 밀릴 순 없다는 생각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문제가/ 뭔지도/ 모르고/ 무식하게/ 열심히만/ 일했다.
손님이 없어도 새벽 7시까지 꼭 가게 문을 열어두었고, 늦게 가게 문을 연다거나 쉬는 날도 없었다. 재료가 있든 없든 무조건 수산시장에 나갔다. 음식을 얼마나 팔았다고 하루에 수산시장을 두 번씩 나가곤 했다. 뭘 모르는 초보 장사꾼이라도 해산물은 신선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또 새벽에 사지 못한 물건을 오후에 나가 더 사야 하기도 했다.
사실 새벽에 시장에 나가면 내가 살 물량을 팔질 않았다. 도매시장 상인들은 나처럼 이거 조금 저거 조금 사는 손님은 안중에도 없다. 그러면 거기에 더 주눅이 들어 차마 가게 주인에게 낙지 한두 마리 달라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었다. 그래도 절대 새벽에 시장 나가는 일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새벽시장에서 조개나 생물을 사면 꼭 가게에 들러 수족관에 넣어두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집에 가 한숨 눈을 붙이고 가게 나오는 길에 또 시장에 들러 새벽에 못 산 잡다한 것들 장을 봤다. 그래봐야 고작 꽁치 몇 천 원어치, 콩나물 얼마, 미나리 얼마가 다였다.
그즈음 새벽마다 마주쳐서 얼굴이 낯익은 한 사람이 있었다. 시장 보는 것을 보니 나처럼 포장마차 장사를 하는 사람 같았다. 제법 장사가 잘되는지 그 동네에선 꽤 유명한 모양이었다.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새벽마다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게 그만큼 많이 팔렸다는 알리바이를 증명하는 셈이었다.
그에게선 단단한 그늘이 느껴졌다. ‘나처럼 고집 센 인간이 또 있구나’ 싶었다. 다만 나는 어떤 물건이 싸고 좋은지 몰라서 이리저리 헤맬 때 그는 필요한 재료를 빠른 속도로 골라 수레 가득 싣고 사라지곤 했다. ‘난 언제 저렇게 장볼 날이 오나’ 커피 한 잔 마시며 보고 있으면 그 사나이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렇게 주뼛주뼛 시장을 다닐 때, 한번은 해삼 멍게를 파는 아주머니가 불러 세우는 거다. 자식 같은 놈이 물건도 제대로 못 사고 자꾸 얼쩡거리며 얼굴을 보이는 게 안쓰러웠던가 보다.
“뭐가 필요한데?”
물으시기에 기회다 싶어 뭘 사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거저거 궁금한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그러니 소매도 한다시며 물건을 주고, 어떤 가게를 하냐 묻기도 하고, 해삼 멍게는 뭐가 좋은지 한두마디 거들어주셨다. 그 집이 창일집이었는데 그게 인연이 되어 창일집에 다니다 보니 주변 가게도 알게 되고, 낙지는 어디서 사면 되고, 조개는 어디서 사라는 정보도 얻게 되었다.
물건은 별거 사는 것도 없으면서 뭐 그리 묻는 건 많은지. 그래도 그 모습을 좋게 봤던지 물어보면 자세히 일러주고 얼굴이 익은 상인들은 묻지 않아도 좋은 물건을 먼저 내주기도 했다. 어쩌다 상인들이 함께 마시자며 주는 커피는 어찌나 달던지…. 아무튼 시장 사람들이 “저 궁상맞은 놈 또 왔네” 하면서도 성실함만은 알아준 것 같다.
사실 내색은 안 했지만 장사가 안 돼 답답하니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걸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마음이 왔다갔다 했다. ‘빚을 갚기는커녕 더 쌓이는 거 아냐’ 걱정스러웠다. 포장마차 콘셉트는 아닌 것 같아 우동집으로 바꿔볼까, 계란말이 김밥을 한번 팔아볼까, 장사 잘되는 우동집 김밥집 염탐도 꽤 다녔다. 그래도 시장 사람들에게 이런 소리 저런 소리를 들으면 도통 갈피가 잡히지 않던 마음이 위로가 됐다. 어쨌든 아직 생활비도 안 나오는 매출이었지만 아주 느리게나마 매출이 늘고는 있으니 ‘그래 좀 더 견디자’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처음 장사를 시작하면서는 손님은 스스로 알아서 오는 거라 생각했다. 하루 2만 원씩 열 팀의 손님만 받아도 매상 20만 원은 거뜬하다. 설마 밤새 열 팀의 손님도 못 받을까, 초짜 사장 마인드였다. 첫 손님이 가게로 들어섰을 땐 메뉴판에 몇 가지 안주가 다였지만 뭔가 눈부신 느낌마저 있었다. 그게 다 나만의 착각이었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얼마 못 가서 수익은 고사하고 빚이 서서히 늘기 시작했다. 쉽게 재기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와르르 무너졌다.
‘오늘은/ 어제보다/ 낫겠지.’
이 마음으로 하루하루 손님을 기다리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왜 장사가 안 되는지 손님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법을 몰랐다. 그저 포장마차 주인일 뿐이었다. ‘이 동네는 손님 수준이 떨어져’, ‘포장마차 입지가 아니야’ 여전히 이런 한심한 고민만 했다.
청소를 한다, 수산시장을 다닌다, 열심히 일했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포장마차 주인 입장에서의 불평뿐이었다. 어쨌든 뜸하게라도 손님이 들면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고 재빨리 손님 테이블에 내놓기는 했다. 그런데 늘 당연히 맛있게 먹어주리라 기대하지만 항상 손님이 떠난 자리엔 음식이 반 이상 남아 있었다.
‘도대체 왜 돈 내고 먹는 음식을 남기는 거지? 돈 아까운지 모르네.’
이해가 안 됐다. 주인 입장에서 불평하고 손님 탓을 했다.
그러다 손님들이 남기고 간 안주 맛을 보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맛도 모양도 크기도 손님을 설득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내가 먹어봐도 음식이 맛이 없었다. 그렇다고 손님에게 장사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으니 좀 봐달라고 할 수도 없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장사를 잘하는 사람들은 특별한 비법을 숨기고 있다고 믿었다. 그 비법은 평생을 알려고 해도 알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마저 있었다. 그런데 테이블에 남기고 간 안주를 보면서 장사는 요령이 아니고 정성임을 깨달았다. 꼭꼭 숨어 있던 장사의 비법이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허무한 순간이었지만 한편 가슴속에서 뜨거운 게 치밀었다.
다시 열정이 솟고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이후 난 테이블을 정성스럽게 닦는 일부터 다시 시작했다. 모서리에 뭐가 묻었나 꼼꼼히 확인하면서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