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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스승은 손님

 

어느 일간지에서 이태원 ‘버들골’을 소개하는 글이다. 10년 새 ‘버들골’은 이태원 대표 맛집, 멋집으로 소문이 났다. 그동안 내가 개발한 안주만도 수십 가지, 그중 메뉴에 올려 파는 안주만 28가지다. 모두 모양과 색깔, 디자인이 그럴싸하다. 또 모든 안주는 손님들의 검증을 거쳐 메뉴에 올려진 것들이다.
하지만 원래 버들골은 맛도 없고, 멋도 없는 술집이었다. 10년 세월 동안 조금씩 발전해 지금의 맛과 멋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버들골’표 맛, 멋 개발의 일등공신은 손님이다. 새로 개발한 안주는 늘 먼저 손님들에게 서비스로 선을 보였고, 그러면 주인장 성의를 알아본 손님들이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차츰 이것을 더 넣으라, 아니면 어느 술집에 갔더니 어떤 메뉴가 불티나게 팔리더라,며 약도까지 그려주시는 분도 있었다. 그러면서 주류 판매도 호전을 보이고 조금씩 매출이 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을 고생하니까 한 번 들렀던 손님들이 다시 가게를 찾아주게 되었다.

 

 

 

 

장사꾼에게/ 가장/ 큰/ 스승은/ 손님이다.

손님들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손님이 불만을 토로하거나 조언을 하고 요구사항을 말하는 것은 이 가게에 또 올 테니 그만큼 더 나은 모습을 보여달라는 고마운 제안이다. 그러면 다시 찾을 그 손님을 위해서 더 노력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지금 ‘버들골’에서 내는 홍합탕은 콩나물을 넣어 국물을 낸다. 이것도 손님이 주신 아이디어다. 강원도에 있는 친척이 홍합탕에 콩나물을 넣어 끓였는데 참 개운했다는 거다. 처음엔 이해가 안 됐다. 콩나물을 넣으면 오히려 홍합 고유의 맛이 나지 않아 콩나물국도 아니게, 홍합탕도 아니게 될 것 같았다. 또 국물이 너무 지저분해질 것도 같았다.
그래도 일단 시도는 해봐야 한다. 국물이 지저분해지지 않으면서 콩나물의 개운한 맛과 홍합이 잘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방법은 자루였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웬만하면 다 아는 방법이지만 그때까지도 난 모르고 있었다. 술장사를 하면서 주류업체에서 소주잔을 협찬해 주는 걸 몰라서 술잔을 사다 썼으니 뭔들 제대로 알았을까. 어쨌든 자루에 콩나물이며, 대파며 각종 야채를 넣어 끓인 국물에 홍합을 끓여내니 맛이 참 좋았다. 결국 지금까지 그 방법으로 홍합탕을 끓여내고 있다.
계란말이, 양념간장도 처음부터 지금의 맛이 난 게 아니다. 요즘 계란말이 안주는 속에 치즈를 넣어 만다. 처음엔 그냥 야채 계란말이였다. 손님이 치즈를 넣어보라 알려줬는데 계란말이에 들어가는 치즈가 어떤 치즈인지 몰라 한참을 또 헤맸다. 피자에 들어가는 치즈를 넣어야 녹으면서 적당히 늘어지기도 해 보는 맛도 있고 먹는 재미도 있는 것인데 일반 치즈를 넣고선 손님이 말한 모양이 안 나와 고민했었다. 하긴 계란말이용 프라이팬이 있는지도 몰라 계란말이 만드는데도 꽤 고생을 했던 시절이다.
양념간장도 그렇다. 어느 날 손님이 청양고추를 좀 썰어달라고 하셔서 썰어다 드렸다. 워낙 주변머리가 없어 손님에게 “왜 그러시느냐” 묻지도 못하고 갖다 드렸다. 그러고 나서 손님이 뭘 하시나 봤더니 간장에 섞어 드시는 거다. 양념장에 맵고 개운한 맛이 없었나 보다. 지금이야 시중에 조림간장이니, 소스간장이니 맛있는 간장도 많이 있지만 그때는 그것도 없었다. 어쨌든 그 모습을 보고 다시 맛있는 양념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안주 맛뿐 아니라 가게 인테리어며 분위기 등에 관해서도 손님들에게 많이 배웠다. 원래 처음 6년 동안 ‘버들골’ 조명은 형광등이었다. 지금 쓰는 조명은 가게 리뉴얼을 하며 바꾼 것이다. 형광등은 조개구이 집을 하던 사람이 쓰던 것인데, 돈이 없어 개비를 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나 또한 무심결에 그냥 놓치고 간 부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손님이 날 가만히 부르더니 술집 불이 너무 밝다며 한 말씀 하시는 거다. 혹시 밝은 형광등 불빛 아래서 술 한 잔 하는 것도 이채롭다며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과연 지금 우리 가게에 오는 손님 중 그런 분이 얼마나 될까 싶다. 어쨌든 얼른 형광등에 한지를 덮어 그때부터 ‘버들골’은 다른 색을 가진 가게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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