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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밀리면 끝장이다! - 긴 겨울 끝에 봄이 열리다.

 

 

 

 

가게 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 사람들이 모이는 홍대 앞, 혜화동, 영등포, 이태원…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고, 동네마다 있는 생활정보지는 모조리 뒤졌다. 아내가 어렵게, 어렵게 1천만 원을 더 구해와 2천만 원을 마련해 가게 자리를 보러 다녔는데 금액에 맞는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족히 3개월은 가게 자리만 보러 다녔다.

 

단돈 40만 원 들고 집을 나와 2년을 집 밖으로 떠돌다가 어떻게 마련한 돈인데, 얼마나 큰돈인데, 막상 그럴싸한 일을 시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어떤 장사를 할지 아이템을 정하는 것도 사치였다. 돈에 맞춰 할 수 있는 일을 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형네 주차장 근처에 작은 꽃집이 있었는데 갖고 있는 돈이면 해볼 만도 한 것 같아 꽃시장을 다녀보기도 했고, 작은 라면집 자리를 보기도 했다. 어쨌든 일단 사고부터 치고 수습해보자는 심정으로 가게부터 얻으러 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이태원 <벼룩시장>을 보다가 ‘조개구이 집’이 매물로 나온 것을 발견했다. 후미진 골목길에 인적은 드물고, 가게 앞에 나이 든 큰 버드나무가 서 있는 집이었다. 이태원이라도 상권과는 동떨어진 위치였다. 오히려 주택가가 시작되는 지점 같았다. 가게 임대료를 내고 나면 집기 구입도 모자를 판인데 마침 수족관이며 테이블을 모두 두고 간다기에 잘됐다 싶었다. 며칠을 조개구이 집을 지켜보니 그리 나쁘지 않았다. 메인 상권은 아니지만, 저녁이면 가게 앞에 서성이는 사람들도 몇몇은 꼭 있었다. 알고 보니 가게 건물 지하에 바가 있었다. 어쨌든 그런 사람들한테만 장사를 해도 생활비는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을 정했다. 전에 쓰던 집기를 활용할 수 있는 실내포장마차로 결정했다. 흥정도 잘됐다. 보증금 1천5백만 원에 월세 40만원, 권리금도 5백만 원을 달라는 걸 반으로 깎았다. 조개구이 집 주인이 먼저 선심 쓰듯 지저분한 수족관 관리하는 법도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수조에 이끼 낀 대합이 보였는데 친절하게 저런 조개류는 수세미로 박박 문질러 씻어야 한다고도 알려줬다. 그 몇 마디도 선배 장사꾼의 조언이라 생각하니 놓치면 안 될 것 같아 귀를 쫑긋 세우고 잊어버릴까 새기고 또 새겨들었다. 결국 수조 관리하는 법은 잔금을 치르고 나선 만날 일이 없어 배우지도 못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장사가 안 돼 대합이 오래도록 팔리지 않아 이끼가 끼고, 그래서 수조가 지저분했던 것인데 말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가게 오픈하는 걸 지켜본 주변 상가 사람들은 가게 망할 날을 두고 내기까지 했다고 한다. 내기한 사람 중 “3개월은 버틴다”가 가장 길게 예상한 것이라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어쨌든 당시 내가 그런 사실을 알 리 없었다. 다만 다시 재기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가게 앞에 서 있는 버드나무도 보기 좋았다. 우뚝 서 있는 버드나무가 꼭 묵묵히 집안을 지키는 가장의 모습 그대로였다. 깊게 뿌리 내리고 흔들림 없이 오랜 세월을 그 자리를 지켰을 버드나무. 가장으로 집안에 버드나무가 되고 싶었다. 버드나무 같이 집안의 그늘을, 지붕을 만들고 싶었다. 그 아래서 가족과 함께 쉬고, 즐겁게 이야기 나누고, 같이 밥 먹을 수 있도록….

 

‘버/들/골’

 

가게 이름도 ‘버들골’로 짓기로 했다. 그리고 1999년 6월 13일, 내 평생 죽어서라도 잊을 수 없는 날 가게 계약을 했다. 이튿날부턴 나머지 돈으로 가게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했는데 인테리어랄 것도 없었다. 문도 없이 천막을 쳐놓고 장사했던 가게의 천장, 벽, 바닥은 지저분하고 황량하기까지 했다. 두고 간다는 대포 상은 조개국물이 찌들대로 찌들어 있었고 틈새에 낀 때에서는 역겨운 비린내도 났다.

사람을 쓸 형편이 아니었으니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혼자 쓸고, 닦고, 망치질을 하고, 톱질을 해가며 일했다. 상황이 사람을 더 단단하게도 더 무르게도 만든다. 밤낮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일하는데도 피곤한지도 힘든지도 몰랐다. 사실 그럴 시간도 없었다.

그렇게 한 이틀을 일했을 때인가 아버지가 찾아오셨다. 목수이신 아버지가 어떻게 아시고 연장가방을 메고 가게에 오신 거다. 얼마나 가슴이 답답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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