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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3. 정성으로 채우는 술잔 - 나무가 숨 쉬는 포장마차
나무 상자를 구했다. 나는 평소 나무가 주는 느낌이 좋다. 물가가 올라 걱정스럽지만 봄이 오니 여러 가지 꽃을 심을 생각에 마음이 들뜬다. 나는 주방에서 안주를 만들거나 설거지를 하면서도 무슨 꽃을 심을까 고민이다. 저녁이면 딸랑딸랑 종을 울리며 지나가는 두부 장사도 나무 상자 가득 심은 꽃들을 보며 봄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나무가 숨 쉬는
포장마차
이태원에 ‘버들골’ 문을 연 지 7년 되는 해, 가게 확장공사를 했다. 사람들에게 진 빚을 거의 청산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가게에 왔다가 자리가 없어 돌아가는 손님이 너무 많아서였다. 일부러 멀리서 ‘버들골’을 찾아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손님은 물론, 심지어는 몇 번을 올 때마다 허탕을 치고 돌아가는 손님들이 있어 개선이 필요했다.
마침 그때쯤 가게에 붙어 있는 창고 자리가 비어 얼른 인수해 확장을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인테리어를 어떻게 꾸밀지가 문제였다. 그동안 만들어진 ‘버들골’ 정취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7년이라는 시간의 때는 새로 만들어 덧댈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그래서 주안점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복원시키는 데 두었다.
그동안 벽에 붙은 메모지, 손님들이 걸어두었던 병뚜껑 하나하나 그냥 버리지 않았다. 혹시나 오랜만에 온 손님이 자신의 흔적이 없어진 것을 보면 너무 서운할 것 같아서였다. ‘버들골’에 새겨진 시간의 때는 나 혼자 만든 게 아니라 긴 세월 손님들과 함께 만들어온 것이기에 그랬다.
사실 벽에 붙은 메모지는 화재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만약 메모지에 불이라도 붙으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것이 ‘버들골’ 흔적이고 나이테다. 그래서 가끔 다른 손님들이 쓴 메모지를 떼어내는 분이라도 있으면, 다른 사람의 추억이니 그러지 마시라 부탁드린다. 어떤 손님이 올 때마다 메모지를 붙여두었던 것을 유심히 봐두었다가 한 곳에 그 손님만의 메모지들만 연결해 붙여놓기도 했다. 그러자 이제 그 손님은 아예 메모를 써 내게 주고 가시곤 한다. 그러니 그런 저런 추억과 기억이 담긴 옛것들을 그대로 복원시키는 것처럼 중요한 게 없었다.
지금 ‘버들골’에서 쓰는 대포 상도 11년을 쓴 나무 대포 상이다. 돈만 주면 언제든 바꿀 수 있지만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애환과 낭만이 스민 것’이라는 생각에 함부로 버리지 못한다. 가게 소품마다 모두 그만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11년 행주질을 한 반질반질한 탁자의 느낌 또한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설하고 옛것을 다시 살리면서 ‘버들골’만의 공간을 어떻게 꾸미느냐가 문제였다.
‘나무가/ 숨/ 쉬는/ 공간’
나무를 활용하면 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무라면 기존의 ‘버들골’ 분위기와 잘 어우러지면서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가게 인테리어에 활용할 수 있는 기본 소재는 많지 않다. 도배와 페인팅을 어떻게 하느냐, 금속 소재의 느낌을 살리느냐 마느냐의 정도이다. 하지만 어떤 소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가게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진다.
나무만큼 자연친화적이면서도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 인테리어 소재는 없었다. 나무가 주는 냄새나 정서적인 느낌을 따를 소재는 없는 것이다. 나무 필름도 이 느낌을 살려내진 못한다. 그래서 ‘버들골’처럼 지난 추억과 기억을 소급하는 가게에는 더더욱 나무 느낌이 필요했다. 나무엔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지는 것 같았다. 물론 세월의 때가 묻어나지 않는 사물이 어디 있겠냐만 그래도 특히 나무가 더 그래 보였다. 많이 다녔던 데로 밟았던 흔적이 남아 길이 생기기도 하는 나무 바닥, 온도라든가 햇볕 등에 적응해 자연스레 비틀어지거나 갈라진 나뭇결이 바로 나무가 온몸으로 시간을 버티고 감당해낸 증거였다.
시간의/ 무게를/ 버텨내는/ 나무에겐/ 배울/ 게/ 많다.
얼마 전엔 간판이 낡은 것 같아 손을 보려 지붕에 올라갔더니 간판을 만든 나무 틈이 벌어지고 뒤틀려 박았던 못이 삐져나와 있었다. 그때 버텨내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오랜 시간 뜨거운 태양 볕을, 비바람을 맞고도 버텨낸 나무가 나에게도 같이 버텨보자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시간의 흔적을 받아내는 나무의 단단함이 좋다. 그래서 오래된 자투리 나무 하나도 버리지 않는다. 잘 챙겨두었다가 액자를 만들어 걸기도 하고, 사포질을 해 시를 적어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거기에 오래된 나무가 주는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나고, 나무가 주는 숨결과 온기가 같은 공간 속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버들골’의 나무 벽은 조개껍데기든, 불가사리든, 말린 가오리든, 내가 방산시장을 돌아다니며 사온 재료로 만든 날개 단 전구든 무엇 하나 거부하고 밀어내는 법이 없다. 언젠가부터 손님들이 붙이고 간 메모지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나무에 덧대어진 풍경 하나하나가 옹이가 되어 단단한 ‘버들골’ 풍경을 만들어냈다.
나무엔/ 남과/ 소통하기/ 위한/ 여백이/ 있다.
그래서 나는 나무가 좋다. 나무에 새겨진 사계절이 좋고, 여백이 좋다. 마치 나무가 주는 여백이 나를 위한 게 아닌 남과 소통하려는 여백인 것만 같다. 사람들은 인테리어로 꾸며놓으면 조개껍데기, 소라, 불가사리를 다시 바라본다. 그 또한 나무가 만들어놓은 여백 덕이란 생각이 든다. 눈으로 볼 때는 나무를 장식하는 소품들이 돋보이지만 나무 없이는 금세 초라해질 것만 같다.
겨울이 되면 길가에 서 있는 나무를 유심히 본다. 잎 떨어진 겨울 나무는 온전히 자신의 모양을 드러낸다. 가지의 휜 모양이라든가, 뻗은 모양이 나무마다 모두 다르다. 그걸 보고 또 ‘버들골’에 어울릴 만한 나무를 생각한다.
지금은 처음 ‘버들골’ 앞에 서 있었던 버드나무가 없다. 대신 뿌리가 없는 자작나무를 심어두었다. 그렇게라도 나무의 모습을 보고 싶어 세운 임시방편이다. 그 자작나무에 생명을 불어넣고 싶어 조개로 잎을 만들어 걸고, 담쟁이 넝쿨을 감아올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제철에 잎을 올리고 꽃을 피우고 낙엽을 떨구는 나무가 그리워 이제 다시 살아 있는 나무를 심으려고 한다. 나무와 함께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오고 있음을 같이 느끼고 싶다.
예전 일상에 바쁜 나에게 버드나무는 위로이고 휴식이었다. 한창 더운 여름날 버드나무가 만들어준 그늘 아래서 땀을 식혔고, 추운 겨울날 가지를 밀고 올라오는 새싹을 보며 봄을 기다렸다. 밀고 올라오는 싹이 “이제 곧 따뜻한 날이 올 테니 조금만 참으라” 다독여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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